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이젤 만셀 (문단 편집) === [[윌리엄스 레이싱]]과 월드 챔피언 === [[맥라렌]]에게 [[혼다]]의 [[터보]][[엔진]]을 빼앗기고 고전하고 있던 [[윌리엄스 레이싱|윌리엄스]]는 [[터보]]가 퇴출되는 1989 시즌부터 이를 박박 갈고 있었고, 엔진 공급사도 [[르노]]로 바꾸면서 엔지니어들도 대대적인 물갈이를 하기 시작했다. 이미 70년대 말부터 프랭크 윌리엄스와 동고동락했던 영혼의 파트너 페트릭 헤드의 포텐이 다시 한 번 폭발해버리면서[* 이 당시 취직한 엔지니어 중 두명이 현재 [[F1]]의 거물 엔지니어라고 할 수 있는 [[로스 브런]]과 [[애드리언 뉴이]].]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액티브 서스펜션[* 컴퓨터가 서스펜션을 제어해 지상고를 원격 조정하여 코너와 서킷 특성에 맞는 최고의 그립을 만드는 기술. 그러나 드라이빙의 순수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얼마 못 가 규정에서 금지되었다. 이후 윌리엄스는 1994년 세나가 이적한 해부터 극심한 밸런스 문제를 겪게 된다.]을 차용하면서 점점 차의 퍼포먼스를 향상시키고 있었고 이 시기에 만셀이 들어오게 된다. 이적 첫 해인 1991년 [[맥라렌]]의 [[아일톤 세나]]에게 챔피언십 경쟁에서 패배했지만[* 초반 3경기 연속으로 세나가 우승할 동안 만셀은 리타이어를 쌓으면서...] 다음해인 1992년 윌리엄스는 액티브 서스펜션과 전체적인 레이스카의 퍼포먼스를 다듬어 '''난공불락과 같은 F1 역사상 최고의 명차 FW14B를 만들게 된다. ''' || [[파일:만셀.jpg]] || || 영국 그랑프리에서 우승했을 당시. 우승 직후 팬들이 서킷으로 뛰쳐나와 유니언잭을 흔들며 만셀에게 금의환향을 시켜줬다. || '''16경기 9승, 전승 폴 투 윈, 리타이어를 제외하면 2위 이하의 성적을 거둔 적이 없었다.''' 나이젤 만셀은 [[1992년]] 시즌을 완전히 정복했었다. 전체 16전 중에서 단 2번을 제외하고 모든 그랑프리에서 폴 포지션을 따냈고[* 이 기록은 2011년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가 [[제바스티안 페텔]]에 의해 깨진다.] 9번의 우승이 모두 폴 투 윈이었다. 1991년 챔피언이었던 [[아일톤 세나]]는 우승을 단 두 차례밖에 못하고[* 6R [[모나코]]와 최종전 [[호주]] 그랑프리. 특히 1992년 모나코 그랑프리는 F1 역사에 길이 남는 명승부이다. 랩당 2초나 빨랐던 만셀은 초반부터 피트스탑한 세나에게 계속 가로막히며 2위를 차지하는데 어찌보면 세나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이기도 하다.] 4위로 내려앉았었다. 드라이버 챔피언십 우승과 준우승을 모두 윌리엄스의 드라이버[* 만셀과 리카르도 파트레제.]가 차지하면서 그동안 쟁쟁한 라이벌들 사이에서 챔피언이 되지 못한 불운을 보상받는다. 그리고 [[1992년]] 영광스러운 챔피언이 된 후 F1에서 은퇴하게 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